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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위기상황의 대통령--국군최고통수권자Commander in Chief

한반도 위기상황의 대통령--국군최고통수권자Commander in Chief

  • 기자명 편집부
  • 입력 2013.04.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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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이 1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에서 열린 2013년도 국방부.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전쟁은 영웅을 만든다.

후한서(後漢書)가 출전인 고사성어 ‘난세지영웅’(亂世之英雄)은 재략(才略)이 뛰어나고 권모술수(權謀術數)에 능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큰 공을 세우는 영웅을 일컫는다. 어지러운 세상에서 큰 공격(攻擊)을 이룩한 이 ‘난세지영웅’은 주로 전쟁의 주인공이다. 전쟁과 자연재해, 국가적 재난과 대재앙 등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사라지고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할 때, 즉 전시와 난세난국에 정치 또는 군사 지도자가 그 절체절명의 위난을 극복, 국가적 위기를 벗어나면 사람들은 그를 ‘호국 영웅’(護國英雄) 이라 부른다.

20세기 들어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이런 전쟁의 주인공이 된 예 가운데 여성이어서 더욱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람은 영국이 낳은 ‘철의 여인’Iron Lady 마거릿 대처 총리다. 보수당 당수를 거쳐 영국 최초 여성총리가 된 그는 1982년 4월2일부터 벌어진 아르헨티나와의 영토 분쟁, 포클랜드 전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영국 런던에서 무려 8000여 마일(1만2874km)이나 떨어져 있는 아르헨티나 동남쪽 해역의 섬 포클랜드제도(아르헨티나 명 ‘말비나스’/ 아르헨티나에서 동쪽으로 480km 떨어진 남대서양상에 동ㆍ서로 나누어진 두 개의 큰 섬과 770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진 군도다. 면적은 약 1만 2000㎢, 인구는 2008년 기준, 3100여 명에 이른다. 수도는 동포클랜드에 위치한 스탠리다. 현재 영국령에 속해 있지만, 아직도 아르헨티나가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에서 벌어진 이 어렵고 힘든 전쟁에서 뛰어난 정치적 역량과 외교적 협상, 군사적 전략을 발휘해 피침ㆍ정복된 섬을 1982년 6월4일 75일 만에 다시 탈환하는데 성공한다.

영국이 18세기부터 점령해온 아르헨티나 연안의 불모지 포클랜드 섬의 주권을 다시 주장한 아르헨티나의 무력침공에 즉각적으로 강력히 대응하기 위해선 평화 시에 전쟁 돌입 찬성이라는 국민의 전폭적 지지와 국제사회의 외교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꽃다운 젊은 군인들의 희생이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대서양을 건너는 전함들의 해상전과 공중전으로 막강한 아르헨티나 군을 격퇴시킴으로써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1983년, 1987년 실시된 총선거에서 보수당이 계속 승리, 대처는 3기를 연임하는 영국 사상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되었다.

당초 전쟁 전 국내 노동자 계급과 강성노조에 대한 대대적 공격으로 국내적 불만이 치솟아 보수당의 재집권 가능성이 불투명하였으나 대처는 평화시 비싼 제국전쟁의 부당성을 내세운 야당과 언론의 반대는 물론 당내 반전파 세력들의 반란을 이겨내고 이 군사적 분쟁을 일거에 해결, 정치적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육해공 전군을 통수하는 최고사령관(Commander in Chief)으로 국민들에게 강력하게 각인된 이후 대처는 전쟁승리의 분위기를 이용하여 강력한 리더십의 상징으로 부각되었고, 자신이 추구하던 대처리즘을 구현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세계인 영국 정치권에서 그 특유의 카리스마로 20세기 들어 심각한 ‘영국병’을 치유한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애국심을 부추기고 대서양 건너 멀리 이역만리 전쟁터에 영국의 젊은이들을 파병해서 피의 대가로 얻은 전쟁에의 승리로 만회했던 것이다.

지난 3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처칠아카이브센터’가 공개한 대처 전 총리 관련 기록물에 의하면 1982년 4월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를 무력으로 점령하자 마거릿 대처 총리가 이끄는 당시 영국 보수당정부는 전쟁 여부를 놓고 극심한 혼란에 빠졌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내각에서는 긴박한 사태를 맞아 반전론부터 당장 전쟁에 나서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엇갈렸다. 대처는 엇갈린 당내 의견 때문에 마지막 순간까지 전쟁 개시 여부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야 했다. 포클랜드 사태 해법을 둘러싼 보수당 내 의견은 '전쟁 불사론'부터 '전쟁 기피론'까지 여섯 개 그룹으로 갈기갈기 나뉘어졌는데 이 같은 분열된 당내 상황이 대처에게는 능력의 한계점을 실험하는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소장파 각료였던 켄 클라크 정무장관은 수적으로 우세한 강경론에 맞서 "아르헨티나 군함을 몇 대 공격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그는 티머시 레이즌 당시 의원과 함께 "국민은 영국이 전쟁에 나설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확전은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총리에 건의했다. 대처는 이 같은 주장을 담은 문서에 파란색 볼펜으로 밑줄을 쳤던 것으로 확인됐다.

스티븐 도럴 전 보건장관도 "협상전략으로 함대파견은 지지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철수해야 한다"고 전쟁 반대론을 폈다. 존 페이지 등 당시 의원 5명도 "전쟁 없이도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냉정을 유지할 것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침공 4일째인 4월6일 조플링은 총리를 위한 브리핑 자료에서 "일반적 수준의 반응을 표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강경론자인 피터 밀스 당시 의원은 "국민은 피를 원한다"는 발언으로 전쟁개시를 촉구했다. 이밖에 대처는 직접 작성한 메모에서 여왕의 차남인 앤드루 왕자의 포클랜드 전쟁 참전을 지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역사학자인 크리스 콜린스는 이번 자료가 포클랜드 전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당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던 상황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는데, 그 가운데 최후의 선전포고, 전쟁개시는 바로 대처 총리의 결정에 달려있었으니 ‘철의 여인’ 대처가 후에 생애 최악의 순간으로 꼽은 것이 무엇이었을까는 짐작하기 그리 어렵지 않다.

그는 1982년 3월 포클랜드전쟁 발발 며칠 전 아르헨티나가 무력으로 영국령 남조지아섬, 포클랜드를 점령했던 사건을 생애 최악의 순간으로 꼽았던 것이다. 또 포클랜드제도를 되찾지 못해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종이호랑이’로 여겨질까 무척 두려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2012년 12월 28일, 30년 만에 공개한 수천 쪽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대처는 1982년 10월 전쟁이 끝난 뒤 비공개 청문회에서 “아르헨티나가 포클랜드 침공 같은 바보짓을 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도 나에게 포클랜드를 되찾을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그는 천여 명에 이른 인명손실 끝에 포클랜드 섬 영토 관할권을 다시 탈환한 전쟁을 “마치 내 심장을 칼로 겨누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대처는 당시 전쟁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판단했다. 또 해군 특수부대를 보낸다 해도 이동 중에 전세가 악화돼 포클랜드에 도착할 쯤에는 군사작전이 위험하다는 보고도 들었다. 자신의 회고록에 기록한 것보다 전황이 훨씬 비관적이었음을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전쟁승리를 축하하는 연설에서 “포클랜드 전쟁이 영국국민들이 가진 최상의 장점들을 이끌어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장점들이 전시뿐 아니라 평화 시에도 계속 유지되기를 바란다”고 말함으로써 전쟁의 정치적 본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대처는 1993년 회고록 ‘다우닝가의 시절’에서 포클랜드제도를 둘러싼 영국과 아르헨티나의 전쟁을 회고하면서 “우리는 근본적인 중요성 원칙, 무엇보다 침략자들이 성공해서는 안 되며, 국제법은 무력사용을 우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전 세계를 향해 옹호하고 있었다”고 무력으로 재발된 분쟁해결의 무력 응징을 정당화했다.

박근혜 신임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멘토이자 가장 존경하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는 정치 지도자가 올해 88세 미수의 대처 전 총리다. 그가 포클랜드전쟁을 수행했을 때의 그 외롭고 고단한 정치적 입장과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중압감, 그리고 국가보위의 책무 속에 생사가 엇갈리는 전쟁터에 영국 젊은이들 파견해야 했던 그 심경이 그날로부터 31년이 지난 2013년 봄, 북핵위기로 북한의 일방적 정전협정 파기선언 속 전시상태를 맞은 한반도 남쪽 땅 대한민국의 최고 군통수권자 박근혜의 처지에 비할 수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월2일 취임 후 처음으로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주재했다. 국가의 안위가 흔들릴 수 있는 잠정위기 상황 아래서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 및 재산을 보위해야하는 국군 최고통수권자로서 그야 말로 북한의 도발위협이 매우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잇따른 인사문제 등으로 정부출범 첫 발부터 휘청거리고 있으나 대북관계와 외교ㆍ안보 분야에서의 안정적 위기관리를 확실하게 챙기는 ‘안보 대통령’의 면모를 부각시킴으로써 취임 이후 40% 대라는 역대 최저 지지율을 기록한 악순환의 고리를 차단코자하는 바람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로 국방부장관과 통일부장관, 국가정보원장, 외교부1차관을 불러 외교안보장관회의를 열고 북한위협에 대한 정부 대응방향을 논의했다. 전날에는 국방부와 국가보훈처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에 대해 어떤 도발이 발생한다면 일체 다른 정치적 고려를 하지 말고 초전에 강력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나는 현재 북한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대통령은 하루 전 4월1일엔 북한 도발과 관련해 “우리 국민과 대한민국에 대해 어떤 도발이 발생한다면 일체 다른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고 초전에 강력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국방부와 국가보훈처 업무보고를 받으며 “북한이 천안함, 연평도 도발과 핵실험에 이어 최근에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간 통신선 차단, 그리고 마침내 전시상태 돌입을 선언했다. 현재 북한의 위협을 매우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나는 군 통수권자로서 북한의 돌발적이고 기습적인 도발에 대해 직접 북한과 맞닥뜨리고 있는 군의 판단을 신뢰할 것”이라며 국가 안보 수호 의지를 재차 밝혔다.

나아가 박 대통령은 “현재 안보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의 주권과 안보를 지키는데 우리 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며 “앞으로 국민 안위를 지키는 일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임해주기 바란다”며 기강확립을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지난해 장거리 미사일발사와 올해 3차 핵실험에 이어 정전협정 백지화ㆍ전시상황 돌입ㆍ개성공단 폐쇄 등 전방위 위협을 가하며 도발을 예고하자 국가를 보위해야 할 군통수권자로서 '안보의지'를 과시하며 국민을 안심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한데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즉각 대북제재 결의를 채택하자 지난 4월2일 우라늄 농축공장과 5MW급 흑연감속로를 포함한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3일에는 우리 근로자들이 개성공단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한다는 것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본격적으로 추출하겠다는 의미다. 또 4일엔 북한은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강력한 군사적 실전 대응조치를 연속 취하게 될 것임을 백악관과 펜타곤에 통고한다”고 위협, 한반도의 긴장을 시시각각 계속 고조시키고 있다.

난세지영웅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 조조가 중국 후한 말기를 1800여 년 훌쩍 뛰어넘어 21세기 오늘 한반도에 태어난다면 이 실타래처럼 얽힌 한반도 위기를 어찌 풀어나갈까?

조조의 ‘난세 리더십’은 청조 말에 출간돼 ‘실리를 위해 도덕을 폐하라’는 파격적인 메시지로 중국대륙 전역에 화제를 모았으며 현대 중국인의 국민성에도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학문으로서 ‘제왕학’(정치리더십을 향상시키는 학문체계.제왕학은 모든 군주가 갖춰야 할 학문을 을 집대성한 것임)의 결정판『후흑학』(厚黑學. 중국 3대 기인 중 한 명인 청조말 이종오가 1912년에 완성한 학문)에 의하면 대략 7가지로 요약된다.

▲주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진단하는 통찰력, ▲인재를 단박에 알아보는 지감, ▲인재의 과감한 기용과 능력에 따른 적재적소 배치, ▲엄격함과 관용을 겸비한 신상필벌,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 손에 든 것을 과감하게 포기하는 결단력, ▲기존 가치와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창조력,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이 그것이다.

11년간의 총리 역임과 32년의 파란만장한 정치역정을 걸어온 아이언 레이디 대처 총리에게서는 이 7가지 제왕학의 요체를 엿볼 수 있었으되, 대한민국의 최고 군통수권자(Commander in Chief)가 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도 이를 기대한다는 것이 큰 무리일까? 우리 과연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조조는 다재다능한 장수이자 군주였고, 정치가이자 시인이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으로 전장을 누비면서도 부하들을 아꼈고, 인재를 귀하게 여겼다. 물론 잔인하고 교활한 면모도 보였다. 또 여색을 좋아해서 처첩들 중 성씨가 분명한 사람만 15명이었다. 그래도 일부 과오 때문에 조조의 전부가 폄하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강하다.

특히 인사가 만사임을 알아 피아를 구분하지 않고 적국 출신까지 포용했던 조조의 능력 우선 인재 등용책은 정치 자체를 상재전장(常在戰場/ ‘언제나 전쟁터’의 뜻에서 언제나 전쟁터에 있는 기분으로 일에 임한다는 무사의 마음가짐을 설명한 말)의 마음가짐으로 여겨야 하는 ‘Commander in Chief’, 대한민국 대통령에겐 가장 치열하게 받아들여야 할 통치의 요체다.

불통과 독단, 독선과 고집, 오만과 나홀로식 구멍난 인사라는 제왕적 대통령의 낡고 더러운 외투로 휘감은 채 권력의 마성에 마취돼 대탕평과 국민화합 및 화해약속을 안타깝게도 날려버린 채 집권 한 달 반이 허망하게 흘러갔다. 국정운영과 인사가 시스템이 아닌 대통령 일인의 독단에 의해 이뤄져 왔다. 박대통령은 이 안보위기와 국정난맥이라는 국가적위기 속에서 약속과 신뢰, 원칙의 참뜻과 정치통합의 정도를 다시 깨달아 ‘대도무문’(大道無門/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큰 도리道理나 정도正道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으로, 누구나 그 길을 걸으면 숨기거나 잔재주를 부릴 필요가 없다는 말)의 마음가짐으로 뚜벅뚜벅 전진해야 할 때다.

 

한준엽(국회신문 대기자/ 논설위원)joonyeobhan@ms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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