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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사한 학벌보단 정정당당한 능력이 인정받는 사회

치사한 학벌보단 정정당당한 능력이 인정받는 사회

  • 기자명 송하영칼럼니스트
  • 입력 2013.04.04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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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마다 대학이 넘쳐나고 있다.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데 작은 규모의 대학들이나 지방대학들이 곳곳에 넘쳐 공급이 수요를 넘어설 지경으로 보인다.
고졸 10명중 8명이 대학에 진학한다는데 사회적으로 봤을 때 과연 이것이 합리적인 모습인가를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 볼 때인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 고졸과 대졸의 편견이 존재한다면 이는 바로 우리들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쓸모없는 잣대’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스타강사 김미경씨와 여배우 김혜수씨 그리고 낙마한 경찰청장 이성한 후보자를 비롯하여, 뮤지컬 스타에서부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이르기까지 너도나도 논문의 표절로부터 자유하지 못했다. 건드렸다하면 표절이었고, 터뜨렸다하면 어느 유명인사도 자유하지 못했을 만큼 우리주변에 만연한 표절은 비단 남의 것을 베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구비와 실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직 교수까지 자기가 쓴 논문도 또 다시 베끼는 일(중복출판, 중복게제)도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대학이나 대학원이라 함은 학문의 깊은 연구를 위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 원칙임에도 베껴가면서까지 그들이 학위를 필요로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학위보다 실기가 더욱 중요시 되어야 마땅한 예체능계에서까지 논문을 베껴가며 학위에 연연하는 이유, 또 안정된 직장이라며 우리가 ‘철밥통’이라고 까지 부르는 공직자들은 또 무엇이 아쉬워 베껴가면서까지 학위를 따려했던 것일까.

석사 학위는 그렇다고 치자.
학부의 경우는 등록금을 반값으로 하네 마네 말들이 많을 만큼 학자금이 천정부지로 비싼데도 너도나도 빚잔치를 해서라도 반드시 들어가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졸에게 열린 취업의 문이 예전보다 훨씬 넓어지고 또 임금의 격차도 그렇게 크지 않아 그 편익이 오히려 감소했다는데도 우리는 왜 아이들을 그렇게 대학에 못 보내서 안달인 것인지 말이다.

이 모두를 관할하는 대학의 교수들은 또 어떤가.
실적이라는 족쇄에 메여, 강의실보다 오히려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데다 그나마도 실패할 땐 찍히기까지 한다니 누군들 새로운 분야를 그야말로 ‘연구’하고 싶을까.
한 교수의 말을 빌자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어느 정도 진행된 연구만을 과제로 신청하는 것이 관례이며 그마저도 실패를 염두에 두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했다. 왜냐하면 실패하면 돈을 받은 연구자는 물론이요 그 돈을 집행한 정부기관 모두 눈 밖으로 찍혀 향후 몇 년간은 아예 다음 과제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란다.

우스운 일이다.
교수는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주 업무로 하는 것이 마땅한데, 오히려 강의실을 등한시하고 연구실에 처박히는 것이 다반사인 것도 모자라 그나마도 세상에 없는 ‘창조적’인 것을 연구하기는커녕 이미 국내외 학계에 어느 정도 진행된 주제만을 선택한다니.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 연구비 못 따내는 것이 두려워 ‘실패’를 무서워하다니. 실패가 두렵다면 과연 새로운 학설이나 결론을 어찌 도출하겠다는 것인지.

대학들을 취업률로 평가하여 줄줄이 줄을 세웠을 때부터 알아봤어야만 했다.
언제부턴가 학문의 연구는 뒷전, 그저 스펙 쌓기도 모자라 고시생들만을 우대해 주는 장학제도까지 대학에 만연하니 이제 대학이 어찌 대학일고.
그러니 그 안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이것이 선생인지 영업사원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본업인 수업보다 엉뚱한 곳에 더 힘과 정열을 쏟을 수밖에. 하여 가르치는 것인들 제대로일까 아님 배우는 것인들 제대로일까.

그래도 너도나도 대학에를, 그 ‘시시한 대학’에를 못가서 안달이라니 이건 무슨 문제가 있어도 크게 있어 보인다.
등록금이 오르는 수준은 가파른데 반해 고졸과 대졸의 임금 차는 거의 없어 그 편익이 아주 미미한데도 불구하고 그 잘나신 대학에를 굳이 가려고 목을 매는 우리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한번 반성할 일이다.

더 이상 학위가 스펙이 아니길 바란다.
또한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도 아니길 바란다.

남의 것을 베껴 쓰는 논문은 ‘관행’이 아닌 명백한 ‘범죄’이고 ‘도둑질’이며 ‘저작권의 침해’임도 각성해야 한다. 또한 교수들도 실적과 연구비를 따내려는 목적으로서의 연구가 아닌 정말 관련분야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사명으로 임해주길. 그리고 연구실만큼 강의실도 중요함을 잊지 말아주길. 대학들도 유명인사에게 선심 쓰듯 학위를 남발하여 대학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일을 자행하는 것도 이제 그만 멈추어야 할 것이며, 논문을 표절한 것만큼 자격 없는 논문에 학위를 주는 일도 이제는 결코 용서받지 못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 하였거늘, 우리는 너무 한해 한해 얼마나 취업을 시켰는가, 얼마나 많은 고시합격생을 배출했는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우리대학출신인가, 하는 단기적이고도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교육을 평가하는 것은 아닌지.

안 그래도 요즘 창조, 창조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교육도 ‘창조적’으로 일희일비하지 않는, 넓게 보고 멀리 내다보는 시각으로 다 같이 편견 없이 인재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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